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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 중단? 차라리 떠난다…코로나 후 사무실 다시 붐빌까 [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 ‘붐비는 사무실의 귀환’

최근 미국, 유럽의 주요 기업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잇달아 완화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는 지난달 중순부터 회사 사무실 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를 해제했다. 기업들은 예방접종을 완료한 사람만 고용하는 정책도 없애고 있다. 미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은 전 직원에게 백신접종을 요구하는 방침을 연초에 폐기했다. 2년 전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직원들은 빠르게 사무실로 돌아오고 있다. 영국 정부는 올해 1월 재택근무 권고 지침을 공식적으로 종료했다. 미국 주요 기업들도 회사로 직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지난달 15일 미국 신용카드 업체인 아메리칸익스프레스(아멕스)를 시작으로 씨티그룹(21일)과 정보기술(IT) 기업 구글(이달 4일), 애플(11일) 등이 직원들의 사무실 복귀를 요청했다.

과거 코로나19가 확산될 당시 재택근무가 화두였던 것처럼 ‘출근’ 역시 뜨거운 관심사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붐비는 사무실의 귀환’이라는 기사로 이 같은 분위기를 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쳐다보거나, 수다를 떨고, (음식을) 후루룩하고, 헐떡거리거나 바스락거리고, 안절부절 못하는 직원들에게 둘러싸이는 물리적 현실에 다시 익숙해져야한다”며 잠시 잊고 살았던 평상시 사무실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출근 시 바지를 입는 것은 필수사항이라고도 했다. 직원들이 그동안 얼굴이나, 상체만 보이는 화상회의에 익숙해져 있다는 점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것이다.

 

 

일러스트 동아일보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 “김 대리 이 과장, 잠깐 시간 되나?”

직원들은 곧바로 닥칠 각종 대면 회의와 회식이 걱정스러울 수 있다. 출퇴근 과정도 기나긴 여정만큼이나 무겁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일까. 미국의 직장인들도 여전히 재택근무를 바라는 목소리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여론조사업체 퓨리서치가 1월 재택근무 중인 현지 직장인 588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재택근무자의 78%가 ‘팬데믹이 끝난 뒤에도 재택근무를 하고 싶다’고 답했다. 1년 전(64%)에 비해 14%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눈길을 끄는 점은 직원들이 방역 등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재택근무를 선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당 조사에서 응답자 중 61%는 ‘스스로 선택해 사무실에 나가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직장 폐쇄 때문에 사무실에 가지 못하는 비중은 38%였다. 펜데믹 초기와 정반대의 결과다. 펜데믹 초기에는 64%가 직장폐쇄 때문에 회사에 나가지 않았고, 36%만이 본인이 원해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고 답했다. 퓨리서치는 “사무실이 문을 열어도 사람들은 집에서 일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있다”며 “재택근무자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찾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한다”고 했다.

직원들은 재택근무가 업무 효율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코노미스트가 코로나19 확산 이후 1년 간 미국, 프랑스, 폴란드 등 9개 주요 국가에서 데이터를 수집한 결과, 직원들이 재택 등을 포함한 원격근무가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향상시킨다고 설명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직원들이 통근 시간 절약 같은 생산성과는 상관없는 다른 이유 때문에 자신의 생산성에 대해 과신하거나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직원들의 이러한 자기평가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 “‘일탈’을 ‘일상화’하자고?”

일부 기업의 임원들은 재택근무에 대해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는 “직원들 간 협업은 필수”라며 “재택근무는 일탈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코로나19가 빠르게 퍼지던 때에 신입 사원들이 전원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창 일을 배워야 할 때 화상회의로 ‘일하는 시늉만 내고 있다’며 우려했다. “일이 무슨 장난이야?”라는 상사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월가 황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도 “재택근무는 직원 생산성을 떨어뜨리며 직원들의 창의적 협업을 가로막는다”고 했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는 미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재택근무의 장점을 단 하나도 찾을 수 없다”며 “대면 접촉 없는 근무 방식은 글로벌 기업인 우리에게 부정적 영향밖에 없다”고 했다. 사람들의 비대면 활동으로 가장 큰 수혜를 본 넷플릭스가 재택근무를 비판하는 점이 흥미롭다.

실제로 직장 상사들은 자의든, 타의든(CEO가 원했을 수도 있으니까) 사무실을 선호한다. 증거가 있다. 지난해 10월 글로벌 1위 기업용 메신저 기업 슬랙은 “조사 결과 원격으로 일하는 임원 중 75%는 일주일에 3일 이상 사무실에 있기를 원했다. 일반 직원(34%)과 큰 차이를 보였다”고 했다.

다만, 이코노미스트는 회사가 재택근무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 역시 객관적 지표로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하면서 ‘거물들이 사무실을 좋아하는 이유’로 공간이 부여하는 지위를 들었다. 카펫이 깔린 더 높은 층의 멋진 방과 회의실에서의 큰 의자 등을 줌(화상회의 플랫폼)에서는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지위는 여럿이 있을 때 두드러져 보일 것이다.

 

● “덜 열심히 일할 직원 뽑기”

애플의 일부 직원들은 팀 쿡 CEO에게 공개 서한을 보낼 정도로 사무실 복귀에 반발하고 있다. 재택근무에 익숙해진 다른 회사의 직원들도 비슷한 마음일 수 있다. 지난해 국내 한 대기업의 익명 사내 게시판에는 재택근무 찬반 논란이 벌어졌다. 댓글에 재택근무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한 직원은 회사 측을 옹호하는 듯한 글을 올렸는데, 전산오류로 이 직원이 최고인사책임자라는 사실이 확인돼 직원들이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직원들이 그렇게 원하는데, 재택근무를 병행할 수는 없을까. 재택근무의 생산성과 관련한 몇몇 연구들이 있었다. 미 시카고대와 영국 에섹스대 연구진은 아시아 IT 기업들의 온라인 접속 데이터를 통해 주어진 업무와 직원들이 일한 시간, 처리된 작업의 수 등을 추적했다. 이를 코로나19 전, 후의 수치를 비교한 결과, 직원들의 노동 시간은 30% 늘었지만, 생산량은 정체된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 효율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업무의 속성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한 중국 연구팀은 IT 기업 바이두 기술자 139명이 작업한 코드의 양을 조사했다. 그 결과, 생산성에서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20명 이상의 팀원들이 함께 하는 프로젝트에는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났다. 협업이 필요한 업무에서는 효율이 떨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흥미로운 연구도 있다. 미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엠마 해링턴은 미국의 한 대형 온라인 소매업체 콜센터의 데이터를 분석했는데, 현장 작업자가 재택근무로 이동했을 때 업무량(시간당 통화량)이 7.6%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생산성의 증거로 볼 수 있다. 다만, 원격 근무자는 현장 직원과 비교해 승진 비율은 떨어졌다. 일을 잘 해도 재택근무를 하면서 승진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의미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채용이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전면적인 재택근무는 ‘덜 열심히 일할 직원’을 뽑을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를 조건으로 고용된 사람들은 이전에 현장근무로 뽑힌 사람들보다 생산성이 18%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헤링턴은 “원격근무가 잠재적으로 생산성이 낮은 직원을 끌어들였다는 증거”라고 했다. 재택근무의 장점만을 노리는 이들의 지원이 몰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코로나19 이후에도 재택근무를 활용하고자 하는 기업들이 참고할만한 대목이다.

 

● 일에 대한 태도 변화…“플랜B 없이도 떠난다”

기업들도 고민이 많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기가 빠른 속도로 회복된 미국은 구인난이 심각한 상황이다. 물가가 치솟으면서 기업의 임금 인상 압박이 상당하다. 물가 상승에 맞춰 월급의 올려달라는 요구가 강해졌다. 2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7.9% 올라 1982년 이후 가장 가파른 물가 상승률을 보였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와 공급망 병목 현상, 경기 회복에 따른 소비 증가 등이 물가를 끌어올렸고 그 여파로 인건비가 상승했다. 이후 인건비 상승이 제품 가격에 반영되면서 다시 물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실질 소득은 수개월 째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기업들이 인건비를 올리고는 있지만,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월급이 사실상 줄어든 셈이다. 미 연봉 분석 기업 페이스케일은 올해 미국 기업 92%가 임금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지난해 85%보다 늘어난 수치다.

더 큰 문제는 ‘대사직의 시대’(The Great Resignation)다. 직원들이 “돈은 됐고, 일단 그만두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2월 미국 전체 퇴직자는 610만 명으로 전월보다 약 5만 명 늘었다. 이중 자발적 퇴직자는 440만 명에 달한다. 미국의 자발적 퇴직자는 지난해 11월 450만 명으로 20여 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올해 2월에도 비슷한 숫자가 집계된 것이다. 외신들은 이를 두고 ‘대사직의 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약 300만 명이 노동 현장에 복귀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소매업과 제조업, 정부 소속 교육 관련 업무 종사자들이 이를 선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러모로 기업들이 직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 반도체 기업 인텔은 올해 2월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연차보고서(10K)에서 재택근무 등 변화하는 근무 환경과 이에 따른 인재 유출을 심각한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도 보고서에 “현재와 미래의 근무 환경에 대한 변화가 직원의 요구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다른 회사에 비해 불리한 것으로 인식되면 직원을 고용하고 유지하는 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언급했다. CNBC는 “이는 팬데믹이 발생한 지 2년이 넘었지만 대기업들이 직원을 사무실로 복귀시킬 방법과 그 위험성에 대해 여전히 저울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재택근무를 중단시키면 사표를 내버릴 것 같아 걱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한 점포에 붙어 있는 안내문. 매장 주인은 직원 부족을 알리고, 미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야기한 정부를 비판했다. “죄송합니다, 일손이 부족합니다. 아무도 더 이상 일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최저생계비만 겨우 챙겨주고 추가 복지는 하나도 제공하지 못하는 나쁜 고용주입니다. 일하기는 꽤 끔찍한 곳이죠. 이건 명백히 정부 잘못입니다.” 출처: 트위터

● 코로나19와 ‘욜로 이코노미’

직원들은 왜 ‘플랜B’도 없이 회사를 관둘까. 코로나19 사태 이후 생긴 스트레스 탓이다. 재택근무는 출퇴근 시간을 아낄 수 있게 해줬지만, 일과 가정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고, 이에 대한 압박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WSJ은 “‘MZ세대’(밀레니얼, Z세대) 중 특히 저축해 놓은 돈이 있어 일을 잠시 쉬어도 되는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일을 그만두는 이들이 늘어났다”고 했다. 여기에 “방역 스트레스까지 겹쳐 번아웃(소진)을 느낀 젊은 직장인들도 회사를 그만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는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도 됐다.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것을 목격하면서 삶의 중요한 가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특히 일에 몰두해 사회적으로 성공하겠다는 다짐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마스크를 거치지 않은 상쾌한 공기, 가족들과의 해외여행, 친구들과의 술자리 등 하지 못했던 것들을 더 간절하게 떠올리게 했다. ‘당장 내일 죽을지 모르는데 성공이 무슨 의미냐’고 말할지 모른다.

NYT는 ‘욜로 이코노미’(YOLO·You Only Live Once)라는 글을 지난해 게재했다. 젊은이들이 회사를 관두고 “내 인생은 한 번뿐”이라고 외치는 욜로의 삶을 택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들이 과감하게 사표를 던질 수 있었던 데는 아이러니하게 정부의 코로나19 경기부양책의 영향도 있다. 미국 등 각국 정부는 방역 정책 등으로 자영업자 등이 타격을 입자 돈을 풀기 시작했다. 사회안전망 강화를 목적으로 이뤄진 재정 확대는 사람들의 계좌를 뚱뚱하게 만들었다. 돈의 가치가 떨어진 대신, 기업들의 주가가 뛰었고, 집값도 가파르게 올랐다. 당장 월급이 들어오지 않아도 불어난 자산을 가지고 재충전을 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뉴욕 월가에서는 “사람들이 재산이 늘어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 우울한 ‘포모증후군’(FOMO·Fearing of Missing Out)의 확산

반대로, 돈 때문에 그만두는 이들도 생겨났다. ‘내 집 마련’을 못한 이들의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자산 증식에 대한 욕구가 커진 것이다. 퇴직자의 다수는 구인난인 현재의 상황을 고려해 월급을 더 주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고, 투자 자금이 넘쳐나면서 창업으로 눈길을 돌린 이들도 꽤 있다.

야후뉴스는 지난해 8월 설문에서 미국 퇴사자의 3분의 1 가량이 스타트업 창업을 계획하거나 추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한 제품 평가사이트가 18세 이상 미국 직장인 125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응답자 중 32%가 창업하기 위해 퇴사했다고 답했다. 이 조사에서 가장 높은 퇴사 이유는 ‘더 나은 처우를 위해’(44%)였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선망의 직업으로 꼽히던 공무원의 인기 추락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5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올해 9급 국가직 공무원 경쟁률은 29.2 대 1을 기록했다. 2011년 93 대 1을 기록한 후 매년 하락세를 이어가다 30년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9급 국가공무원 시험의 평균 경쟁률이 30 대 1 이하로 내려간 것은 1992년(19.3 대 1) 이후 처음이다. 현직 공무원과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는 공무원의 매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한다. 적은 보수, 악성 민원에 따른 고충 및 많은 업무량, 경직된 조직 문화 때문이다.

특히 MZ세대는 낮은 임금을 주된 원인으로 꼽고 있다. 높은 집값 때문에 결혼 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실제로 젊은층을 중심으로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주식 소유자(투자자)는 1384만 명으로 전년 대비 50.6% 늘었다. 국내 주식 투자자가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최근 기업 내에서는 ‘젊은 애들이 일은 안 하고 (주식이나 비트코인을 거래하기 위해)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MZ세대는 “열심히 일해서 성과급을 받아도, 승진해서 월급이 올라도 집을 살 수 없다”고 항변한다.

이러한 경제 흐름은 포모증후군을 확산시켰다. ‘매진 임박’, ‘한정 판매’ 등 제품의 공급량을 조절해 소비자를 조급하게 만드는 마케팅에서 비롯된 포모증후군은 자신이 소외되는 것에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는 상태를 뜻한다. 부동산, 주식, 가상자산이 오르는 강세장에서 나만 시장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조급함이 생겨나는 것이다. 최근 한 설문 업체의 조사 결과 20, 30대의 약 17%가 이 증상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긱 이코노미’ 플랫폼 파이버와 크몽, 탤런트뱅크, 숨고 홈페이지. (시계방향) 출처: 각 홈페이지

● ‘긱 이코노미’(Gig Economy) 키우는 플랫폼들

팬데믹 이후 일의 형태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 업무량에 따른 제대로 된 보상 등이 부각되면서 ‘긱 이코노미’ 시장이 커졌다. 이는 기업들이 정규직이 아닌 임시직 형태의 고용을 늘리는 경제현상을 뜻한다. 쉽게 말해 ‘프리랜서’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긱’은 과거 미국에서 여러 재즈바를 돌며 잠깐씩 공연을 해주는 연주자를 ‘긱’이라고 불렀던 데서 비롯됐다.

몇 년 전만해도 우버 같은 승차 공유 업체나 배달 업체의 근로자를 중심으로 긱 이코노미가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기술 등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이 시장을 키우고 있다. 직장을 관둔 직원들이 전문성을 살려서 프리랜서처럼 일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긱 이코노미와 관련해 중개 플랫폼 ‘파이버’(Fiverr)의 성장이 2020년 주목을 받았다. 2019년 6월 뉴욕증시에 상장한 이스라엘 스타트업 파이버는 그래픽 디자인, 디지털 마케팅, 영상 제작 등 기술자들을 일반 회사들과 연결해주고 중개 수수료를 받는다. 이들에게는 적게는 5달러부터 많게는 수백 달러까지 지급되는데, 파이버는 최근 고숙련 기술자를 연결하는 ‘파이버 프로’도 도입했다. 파이버는 직접 심사를 거쳐 전문가들을 선정한다.

파이버의 장점은 비용 절약이다. 정규직으로 사람을 뽑지 않고도 기술자에게 일을 맡길 수 있다. 예산과 목표일, 작업계획서 등을 제공하고 비용을 서로 조율해 효율적으로 작업을 마칠 수 있다. 2020년 말 파이버의 활성 이용자는 300만 명을 넘어섰다. 현재 미국에는 6800만 명의 ‘긱 워커’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크몽, 탤런트뱅크, 숨고 등 파이버와 유사한 플랫폼들이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전공이나 취미를 살려 ‘N잡’(2개 이상의 직업)을 뛰려는 MZ세대까지 몰리면서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소상공인과 기업들의 아웃소싱(외주)을 돕는 크몽은 디자인, IT 프로그래밍, 영상·사진·편집, 마케팅, 번역 등 10여 개 영역 500여 개 카테고리에서 총 33만 건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크몽에 등록한 전문 인력만 20만 명이 넘는다. 가격은 만 원대부터 수천만 원대까지 다양하다. 크몽은 코로나19 이후 사업(거래액)이 두 배 가까이로 커졌다.

중소기업을 위한 인력 매칭에 강점을 갖고 있는 탤런트뱅크 역시 지난해 상반기(1~6월) 요청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150% 늘었다. 탤런트뱅크는 대기업 팀장이나 중소기업 임원 이상의 경력을 가진 전문가를 선별하고 있다. 이 회사가 인증해 연결시켜주고 있는 전문가는 약 3500명으로 알려졌다. 인테리어 등 홈·리빙 분야에 주력하는 숨고도 코로나19 확산 이전 대비 거래 수가 2배 이상으로 늘었다.

 

● ‘공채의 종말’

국내 긱 이코노미 시장은 점점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기술이 발달하고, 업무가 세분화될수록 특화된 영역에 맞는 기술자들을 쓰는 것이 곧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대규모로 한 번에 사람을 뽑아 쓰는 ‘정기 공채’를 없애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대표적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이미 2020년부터 대규모 대졸 신입사원 채용을 상시 공개채용 방식으로 전환했다. 현업부서에서 사람이 필요할 때, 인재를 직접 선발하기로 한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기존 채용 방식으로는 산업 환경에 맞는 인재를 적기에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개발자가 회사의 핵심인 IT 기업들은 대부분 공채가 아닌 경력직 위주로 채용을 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프로젝트나, 특정 업무에 따라 사람을 일시적으로 뽑는 경우도 늘고 있다. 비용이나 효율적인 면에서 경제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사람을 많이 뽑는 것보다 누구를 뽑느냐가 중요해졌다”며 “공채는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 긱 이코노미 시장 규모는 2019년 284조 원에서 2021년 398조 원, 2023년(추정) 521조 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 인재들과의 타협점 찾기

‘대사직의 시대’를 맞은 해외 주요 기업들은 당분간 직원들과 타협점을 찾는데 열중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IT 업계에서 개발자를 두고 연봉 인상 경쟁을 펼쳤던 것처럼 해외에서도 인재 쟁탈전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직원 달래기’의 일환으로 재택근무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현재 직원들에게 사무실 출퇴근과 재택근무를 병행하게 하고 있다. 최근 MS가 임직원 3만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같은 하이브리드 근무자 비중은 2020년 31%에서 지난해 38%로 상승했다. 자라드 스파타로 MS 부사장은 “수많은 기업들이 하이브리드로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면서도 동시에 “동료와의 관계 등 하이브리드 근무가 많은 숙제를 던지고 있다”고 우려도 내비쳤다.

코로나19 이전부터 다양한 근무 방식을 인재를 뽑는 ‘무기’로 활용한 스타트업도 있다. 국내 여행 관련 스타트업인 마이리얼트립은 사업 초기부터 재택근무를 병행할 수 있게 했다. 사전에 동료들에게 이를 공유만 하면 된다. 이동건 마이리얼트립 대표는 과거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사업 초기 좋은 인재를 데려오고 싶었는데, 금전적인 보상이 어려워 원격 근무 같은 근무 방식과 복지 등을 앞세워 인재들을 끌어 모았다”고 했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은 지난해 ‘전면 온라인 업무’를 선언하면서 본사 사무실까지 없애버렸다.

재택근무가 정착되면서 온라인 근무 규범 같은 ‘룰’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팬데믹 이후 많은 직원이 온라인으로 회의 등 일을 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규칙을 갖춘 회사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아니타 울리 미국 카네기멜론대 교수는 “모두가 재택근무를 할 때는 그나마 나았는데, 이제는 재택과 비재택 근무가 뒤섞이고 있다”며 새로운 업무 방식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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