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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로 살기 2
실무감각을 잊어버린 고위직 1

•경험에 의한 무능력 직시하기

오래전인 김대중 정부시절, 고등학교 동창이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했습니다. 정권 말기를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는 친구에게 조언도 해주고, 얼굴도 한 번 볼 겸 청와대를 찾아갔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청와대에는 민원실이 있어 쉽게 입장할 수 있고, 그 위에는 회의실이 있어 비서실 직원과도 대화할 수 있습니다. 약간의 보안절차만 거치면 비서실 건물에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저는 청와대에 여러 번 방문했습니다만, 비서실이나 민원실 건물 2층에 있는 회의실만 가봤습니다.

 

낙엽이 떨어지는 청와대 비서실 정원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제가 청와대 생활을 궁금해하면 그 친구가 답해줬습니다.

청와대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에 초청받는 사람들 중 자신의 자동차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택시를 타고 오는데, 택시는 청와대 경내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청와대 비서실 직원이 자신의 개인차량을 가지고 대기하고 있다가 그 분이 도착하면 태워서 청와대 경내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1970년대나 1980년대에 고위직을 역임한 사람으로, 아직 우리나라에 자가운전이 보편화되기 전부터 기사가 운전하는 차량을 타고 다니다가, 1990년대 경 나이가 들어 퇴임한 이후에도 자신의 자동차가 없이 주로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운전기사가 있는 자동차만 타다보니 운전을 배울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그래서 퇴직한 뒤에도 운전을 못합니다.

 


 

습득된 무능력(trained incapacity)’이라는 용어는 ‘과거 경험이나 경력이 새로운 현재 상황에서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처음 내놓은 사람은 노르웨이계 미국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으로, 1914년에 출간한 ‘기량의 본질과 산업의 현재(The Instinct of Workmanship and the State of the Industrial Arts)’에서 주장한 개념입니다. 그 이후 미국 문필가인 케네스 버크(Kenneth Burke)는 이 개념을 확장해 현재와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지금은 원래 용어인 ‘습득된 무능력’과 같은 의미를 지닌 ‘자격을 갖춘 사람의 무능력(acquired unability)’, ‘배운 사람의 무능력(educated incapacity)’이라는 말이 혼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원 뜻인 ‘한 가지 지식이나 기술에 관해 훈련받고 기존 규칙을 준수하도록 길들여진 사람은 다른 대안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개념은 이제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현직에서 떠난 후 실무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린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이론을 바탕으로 1969년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로렌스 피터(Lawrence Peter) 교수는 관료조직 속 무능사례와 원인을 분석해, 관료조직은 대개 ‘직위에 걸맞는 직무수행능력보다 업무성과를 우선시해 승진시킨다’는 ‘피터의 원리(The Peter Principle)’를 발표하기도 합니다.

사회로부터 전문성을 인정받는 사람들은 조직에서 대부분 상당히 높은 자리에 오른 뒤 퇴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오랜기간 직접 실무를 처리하기보다는 실무자를 관리감독하는 일에 종사했습니다. 어차피 상위관리자들은 각 부서나 실무자 간 갈등조율이 기본 임무인데다, 한정된 시간동안 실무과 상위관리업무를 동시에 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퇴직한 뒤 전문성을 발휘해야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 사람의 전문성을 단기적으로 원하는 기업들은 이런 전반적인 관리업무를 맡기지 않습니다. 대개는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요구하는데, 쉽게 생각하고 시작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직원에게 말 한마디만 하면 채 1시간도 안돼 가져오던 영업실적분석표 한 장인데도
직접 만들면 너무 어렵고, 젊은 시절에는 쉽게 고치던 간단한 장비도 직접 손대려니 막막해집니다.
‘회계처리에는 자신있다’고 느꼈지만, 옛날과 달리 모든 회계과정이 전산화돼
회계 프로그램 작동이 업무본질인 회계보다 더 어렵습니다.

 


 

탤런트뱅크 페이스북 광고 댓글란에 상당히 부정적으로 고급경력직 매칭시스템을 비판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탤런트뱅크 사업모델을 두고 ‘그렇게 짧은 시간에 기업의 성과를 창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한 회사의 비즈니스모델을 파악하는데만 최소한 3-4개월이 걸리는데, 어떻게 3개월만에 전문가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냐’고 덧붙입니다.

댓글 단 사람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 사람은 고급경력직의 한시적 고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환경과 직위를 기준으로 상황을 파악하며, 이미 바뀌어버린 고용시장과 고급경력직에 대한 사회수요를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형적인 ‘습득된 무능력’입니다.

그렇다면, 평생 재직하던 거대조직을 떠나 다시 사회에 홀로 서서 앞날을 개척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을까요?
물론 정답은 없고 모두들 자신의 해법을 찾았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해답에 대해서 다음편에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딱 한마디만 하고 이 편은 마치죠.

변화하는 사회와 달라진 내 자신에 대해 적응하지 못하면 그 손해는 100% 내가 감당해야 합니다.

 

다음 내용은 3 실무감각을 잊어버린 고위직 2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유일

정부지원사업, 해외투자유치, 콘텐츠 전문가

現) 탤런트뱅크 전문가
前) 다산네트웍스 고문
前) 월트디즈니 TV 이사

‘전문가로 살기’는 탤런트뱅크 소속 전문가가 직접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겪은 경험을 정리한 글입니다. 탤런트뱅크에서 전문가로 활동하고 싶으시다면 ‘전문가로 살기’ 시리즈를 참고해주세요. 탤런트뱅크는 전문가님들께서 마음껏 기량을 펼치실 수많은 프로젝트 의뢰를 받고 있습니다. 전문가님과 어울리는 프로젝트를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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