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서 큰 직장에서 퇴직하고, 오래된 습성을 버리지 못하다 보니 늘 그냥 그런 수준의 생각만 하게 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이제 나이 들어서 창의력이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뭔가 새로운 생각과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고, 또한 프리랜서 전문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조직에 몸 담고 있는 사람보다는 당연히 창의력이 필요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게 창의력을 갖추는 일입니다.
젊은 친구들에게 우리는 대개 ‘젊은 감성’ ‘톡톡 튀는 새로움’ 등을 많이 기대하곤 하지만, 정말로 내용을 들여다보면 젊은이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창의적인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젊은이들이 나름 창의적이라고 하면서 내놓는 것들 중 99%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고, 나머지 1%는 창의적이 아니라 황당하거나 불가능한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단지, 젊은이들이 아직 경험이 많지 않고, 또한 학교에서 혹은 사회적으로 습득한 지식이 많지 않다보니 ‘이미 오래 전부터 있는 것’ 을 ‘새로운 것’ 으로 오해하고 있을 뿐이죠.
요즘 학원광고를 보면 창의력이라는 말을 강조한 문구들이 제법 있습니다. 창의력수학으로부터 시작해서 창의력미술, 창의력토론 등등 그 종류도 아주 많습니다. 그렇잖아도 요즘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다들 얘기하는 판에 이런 학원들이 생겨서 ‘이게 뭐지?’ 라는 생각에 조금 들여다봤더니, 대부분은 서양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을 상당히 많이 가져오면서 거기에 우리나라에 맞는 교육과정을 조금씩 삽입하는 형태로 보였습니다.
이런 교육들은 분명히 창의력을 올리는데 도움이 됩니다만, 모두가 그렇게 좋은 결과를 낼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중 상당수는 ‘당장 학교 시험점수와 무관한 교육내용’에 ‘창의력’을 붙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조금 더 야박하게 말한다면, 그런 교육을 실제로 진행할 수 있는 교사나 강사도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얘기는 조금 옛날로 돌아갑니다.
2002년 전국민이 월드컵으로 열광하고 있을 때 저는 10년간 다녔던 회사를 그만 두고 미국회사에 갔습니다. 사무실을 홍콩에 배정 받고 거기서 일을 하는데, 막상 일을 해보니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말이 좋아 홍콩이지 거기 홍콩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고 거의 미국 및 영국사람들이었고, 물론 24시간 영어를 써야 하는 환경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영어를 잘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 보니 이건 뭐 핑계도 영어로 대야 하고, 남을 뒤에서 씹는 것도 영어로 씹어야 하고, 말 빙빙 돌려서 비꼬는 것도 영어로 해야 되고, 거짓말도 영어로 해야 되며, 결정적으로 회의 석상에서 남이 말하고 있을 때 적절한 시점에 끊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 정말로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귀가 아플만큼 자주 들었던 말은 바로 ‘Never-Seen-Before’ 라는 말이었습니다. 즉 ‘그 전에 한번도 본 적 없는 것’이라는 말인데, 아무튼 이 사람들은 뭐든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닌 회사가 엔터테인먼트회사라는 점도 있었겠죠.
그 이후 세월이 지나 저는 애니메이션 제작과 관련한 일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정말로 ‘전에 본 적 없는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캐릭터는 가끔 (물론 이것도 ‘가끔’에 불과합니다) 새로운 것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스토리는 전혀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쥐어짜도 새로운 것이라고 내놓는 것들을 보면 거의 모두 제가 예전에 들어본 스토리에 불과했고, 그나마 재미도 없었습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다시 눈을 돌린 곳이 바로 ‘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대학의 콘텐츠 관련 학과와 협의해서 이들에게서 아이디어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해 보기도 하고, 중간 중간에 각 대학이 주최하는 각종의 공모전 심사위원으로 가기도 했는데, 언제나 결과는 똑 같았습니다.
어떤 학생은 처음부터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는데, 이 학생이 만들었다는 작품은 스토리는 거의 없고 거의 영상테크닉으로 점철되어 있었지만, 그 영상테크닉 마저도 기존 영화에서 이미 선보인 것들이 대부분, 아니 전부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저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더 이상 ‘젊은 사람들’로부터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고 결론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나름 만들어낸 말이 바로,
‘가장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가장 오염된 머리에서 나온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젊은이들은 많은 아이디어들을 들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미 그 판에서 오랜 세월을 굴러먹었던 제가 보기에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 학생들이 그걸 몰랐을 뿐이죠.
그러다 언젠가 한번 디자인 전문가와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 아주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좋은 디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것은 1) 보기에 좋아야 한다, 2) 새로워야 한다, 3) 실용성이 있어야 한다 였습니다.
이 말을 듣곤 나서야 저도 ‘창의성’에 대한 개념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그 누구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한 아이디어를 낼 수는 없습니다. 모든 새로운 아이디어는 기존의 것들을 변형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만든 방법은 4가지였는데, 그것은 1) 합치고, 2) 나누고, 3) 뒤집고, 4) 비틀기였습니다. 그것도 이미 있는 것을 1) 합치고, 2) 나누고, 3) 뒤집고, 4) 비트는 과정으로 저는 정의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춘향전을 들고 온다면, 1) 춘향전과 다른 스토리, 예를 들어 심청전을 합쳐서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나 혹은 춘향이가 이도령과 다시 만난 이후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 있고, 2) 춘향전 중에서도 이도령이 과거 보러 한양으로 떠나는 장면까지만 가지고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고 (이 경우에는 ‘신분을 극복하지 못한 애절한 러브스토리가 되겠죠), 3) 아니면 뒤집어서 춘향이 알고 보니 양반집 딸인데 당파싸움을 피해 기생집에 맡겨졌다가 나중에 신분을 되찾아 이도령을 출세시킬 수도 있고, 4) 그것도 아니라면 비틀어서 변사또가 알고 보니 아주 좋은 사람이어서 이도령이 변사또를 처벌하려고 하는데 이에 반발한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민란이 일어나고 춘향이는 이런 변사또의 모습에 측은함을 느껴서 그날 밤 자청해서 변사또의 방으로 들어가는 등의 예를 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얘기하는 현실적인 창의력인데, 이를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합니다.
우선 앞에서 말한 합치고, 나누고, 뒤집고, 비트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데, 이는 철학으로부터 시작하며 많은 연습을 거쳐야 합니다. 스토리텔링이라면 ‘습작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음으로 더 중요한 것은 합치고, 나누고, 뒤집고, 비틀 대상, 즉 소재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는 독서와 인문학적 소양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무리 음식을 잘 만드는 능력이 있어도 재료가 있어야 요리를 시작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똑같은 이치는 IT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제가 어느 지역의 산업 관련 진흥원에서 본부장으로 근무할 때 IT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이제는 IT산업 또한 1) 창의적 아이디어, 2) 그 아이디어의 IT적 해석, 3) 개발, 4) 시장 으로 나뉜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개발’은 이제 그다지 대단한 능력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장 또한 우리나라 시장은 한계가 있고, 이걸 굳이 ‘창의력’과 연관시키는 것도 부자연스럽습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창의적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의 IT적 해석’이 되는데, 이 부분이 우리나라는 아직 많이 약합니다.
우리나라는 국토보다 훨씬 큰 경제를 가지고 있고, 이제 앞으로 살아갈 방법 중 가장 큰 부분은 창의력입니다. 그런데 이 창의력이 오해되고 있습니다.
창의력이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 사회적 관심과 공감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오랜 경력을 가진 전문가들은 머리 속에 아주 많은 것들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것들을 1) 합치고, 2) 나누고, 3) 뒤집고, 4) 비틀면, 그것이 바로 창의력입니다. 이제 다시 한번 1) 합치고, 2) 나누고, 3) 뒤집고, 4) 비틀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을 시작합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창의력입니다.
정부지원사업, 해외투자유치, 콘텐츠 전문가
現) 탤런트뱅크 전문가
前) 다산네트웍스 고문
前) 월트디즈니 TV 이사
‘전문가로 살기’는 탤런트뱅크 소속 전문가가 직접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겪은 경험을 정리한 글입니다. 탤런트뱅크에서 전문가로 활동하고 싶으시다면 ‘전문가로 살기’ 시리즈를 참고해주세요. 탤런트뱅크는 전문가님들께서 마음껏 기량을 펼치실 수많은 프로젝트 의뢰를 받고 있습니다. 전문가님과 어울리는 프로젝트를 찾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