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90박스를 주문하는 한국
최근 물류는 주목받는 직종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제가 물류업계에 처음 발들일 때만 해도 ‘물류는 비주류 산업’이라는 인식이 짙었습니다. 물류회사에서 근무한다고 말하면 ‘물류창고에서 지게차를 운전하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만큼 물류에 관심있는 사람이 적었고 일상에 관련된 산업이 아니었죠. 하지만 이커머스(e-commerce) 시장이 성장하면서 필요한 상품을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빈도가 높아졌고, 물류에 관심갖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이런 인기는 ‘언제 내가 산 상품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대한민국의 전체 택배 물동량은 약 33억 박스입니다. 이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가 각각 연간 65박스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 중 거의 인터넷 구매를 하지 않는 어린이와 노령층 인구를 제외한 생산가능 인구로 그 범위를 한정하면 한 명이 연간 약 90박스를 받는 셈입니다. 이 밖에 자체적으로 배송하는 새벽배송과 당일배송을 모두 더하면 물동량은 더욱 늘어납니다. 그리고 최근 5년간 해외에서 물건을 사는 직구 물량이 급속히 늘어나기도 했죠. 이렇게 택배와 배송은 우리 생활에 밀접한 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택배와 직구물류가 우리에게 도착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소개하겠습니다.
택배 분류방식: 허브앤스포크 대 P2P
우선 택배를 들여다볼까요. 온라인 쇼핑으로 물건을 사면 택배 송장번호가 발급됩니다. 인터넷에 번호를 입력하면 본인이 구매한 상품위치를 알 수 있죠. 위치 정보가 어려운 용어로 이뤄져있지만 검색하면 대략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럼 택배회사는 어떻게 받거나 보내는 물건을 최종 고객에게 전달할까요?
우선 가장 기본적인 택배 네트워크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택배회사가 사용하는 네트워크 방식은 크게 허브앤스포크(Hub&Spoke)과 P2P(point to point)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허브앤스포크는 우리나라 최대 택배회사인 CJ대한통운이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우선 전국에서 집하된 택배를 한 곳의 거대한 택배터미널로 모은 뒤, 지역별(경기, 전남, 경북 등)로 분류해 보내는 방식입니다.
P2P방식은 롯데택배를 운영하는 롯데글로벌로지스와 우체국택배가 씁니다. 지역별 터미널을 운영합니다. 예를 들면 경기도 남부권에서 발생하는 택배는 인근 지역 터미널로 이동하고, 부산에서 집하된 택배는 부산 터미널로 분류됩니다. 다시 각 지역별 배송대리점으로 배송됩니다. 허브앤스포큽보다 조금 복잡하고 운영비용이 비싸지만 성수기에 탄력적으로 터미널을 여닫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대처능력이 좀더 유연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택배가 도착하지 않는 이유1: 기계 캐파 부족
허브앤스포크 방식을 채택한 CJ 메가허브 광주 터미널에 가면 어마어마한 택배량에 한 번, 이 모든 택배를 빠른 시간내에 분류해내는 자동화설비에 두 번 놀라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택배 터미널이라고 하더라고 하루에 분류해 낼 수 있는 물동량이 정해져 있습니다. 실무 용어로 기계 캐파라고 부릅니다. 터미널에 설치된 자동화 기계가 최대로 분류해 낼 수 있는 하루 박스수를 뜻합니다. 日 100박스, 日 50만 박스로 표시합니다. 하지만 정해진 최대치를 넘기면, 자동화 설비가 지역별로 분류하지 못해 밀리는 물량이 쌓입니다. 고객이 조회하면 택배가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일이 발생하죠.
P2P 방식은 허브앤스포크보다 택배가 고객에게 도착할 때까지 거쳐야할 거점수가 많습니다. 거점별 기계 캐파를 넘기면 특정상품이 여러 대리점에서 반복적으로 분류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지역별 배송속도를 따지면 허브앤스포크 방식보다 배송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전 지역을 대상으로 생각해보면, P2P는 택배터미널의 자동화 분류기가 고장나도 해당지역만 영향을 받습니다. 한 터미널에 모든 택배를 모으는 허브앤스포크는 분류기 고장으로 전국배송이 멈춥니다. 방식에 따라 서로의 장점이 단점으로 작용합니다.
택배회사에 전화해 봐야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 상담사도 언제 그 물건이 분류돼 터미널을 떠날지 모르기 때문이죠. 터미널 전화번호는 공개되지 않아 터미널에서 근무하는 직원조차도 알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전화독촉으로 늦어지는 배송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평소에 허브앤스포크 택배회사를 선택하고 명절 등 성수기에는 P2P 택배사로 물건을 보냅니다.
택배가 도착하지 않는 이유2: 지역 순서별 배송
택배상자는 때로 무사히 터미널 분류과정을 통과했지만 배송기사가 택배를 인수하고서도 예상했던 날짜에 도착하지 못합니다. 택배기사는 보통 새벽 6시 전에 소속 택배 지점으로 이동하면서 하루 업무를 시작합니다. 한상자씩 스캔해 수많은 상자 중 자신에게 배당된 택배를 찾고, 1톤 차량에 상차합니다. 그 때부터 우리가 포털에서 검색했을 때 볼 수 있는 “배송중” 메시지가 뜨고, SNS(카카오톡, 문자 등)로 상자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터미널에서 출발한 택배는 정해진 길을 따라 이동합니다. 택배 상차시 처음 배송해야 하는 지역의 상자는 차량 안쪽에, 나중에 배송하는 지역은 문 앞쪽에 적재합니다. CJ, 롯데택배 등 같은 브랜드의 택배가 매일 비슷한 시간에 도착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특정 택배가 급하다고 해도 먼저 배송할 수 없는 또다른 이유죠. 만약 특정 고객이 자신의 택배를 먼저 배송해달라고 부탁하면 가득찬 택배차 적재함에서 찾아야 할 뿐 아니라 정확하게 짜인 배송 순서가 틀어져버립니다. 아무리 자신의 택배가 급해도 배송중인 물건을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해외직구: 런던 물류창고에서 붙여진 CJ 택배 운송장
다음으로는 직구 물류프로세스를 알아보겠습니다. 직구 물류는 해외에서 수입되며, 해외에서 국내로 반입되는 모든 물건은 통관이라는 절차를 거칩니다. 외국에서 국내로 들어와서는 안되는 물건을 사전조사하거나 판매용 상품에 관세를 부가하는 절차입니다. 해외쇼핑몰에서 구매한 상품이 국내로 들어오는 물류는 해외 현지에서 곧바로 분류되거나 국내 반입 이후 분류됩니다.
인터넷사이트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해외 물류창고(풀필먼트 센터)로 정보가 전송됩니다. 창고에서는 물건을 찾아 정해진 위치로 옮기고 포장해 택배 송장을 붙입니다. 요즘은 해외 창고에서 국내 택배사(CJ, 롯데, 우체국 등) 송장을 미리 붙입니다. 주문과 동시에 운송장 번호가 발급되지만, 아직 전산상으로는 활성화되지 않아 인터넷에서 조회할 수 없죠. 이렇게 포장된 상품은 항공적재를 위한 후처리 작업을 마치고 공항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항공기 출발 전 수입통관을 위해 자동으로 한국 세관에 상품정보가 도착합니다. 항공기는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하역작업을 시작합니다. 항공사가 특송업체(CJ 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별로 분류해두면 공항하역장에서 특송업체가 택배를 수거합니다.
통관 절차는 통과했나요?
아직 택배박스는 정식반입상품이 아닌 해외물품입니다. 각 특송사에서는 대부분 영종도 창고에서 엑스레이 검사와 같은 통관 준비를 마칩니다. 특송사에서는 랜덤으로 상자를 뽑는 샘플통관을 진행합니다. 개인적으로 구입한 물건을 일일이 세관이 검사할 수는 없죠. 특송사에서 상품목록만 신고하면 세관에서는 별도 검사없이 통관시킵니다.
개인이 구입한 물건은 대부분 관세를 부가하지 않습니다. 개인 직구물품은 재판매가 아닌 직접 소비 목적으로, 세관에서는 일종의 특혜를 부여합니다. 직구시 개인 통관부호를 발급받은 경험이 있을 겁니다. 세관은 통관부호로 각 개인이 구입한 상품을 관리하기 때문에, 한 개의 통관부호로 다량을 구매하면 조사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온라인 쇼핑으로 주류산업이 된 물류
쇼핑 패러다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오면서 물류를 접하는 빈도가 늘었습니다.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프로세스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최종소비자로서 권리를 지킬 수 있고, 기업은 불필요한 고객응대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제 업계 관계자가 아닌 소비자도 위에서 설명한 물류프로세스는 반드시 알아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물류 전문가
現) 탤런트뱅크 전문가, 국내 대기업 A 물류사 재직 중
前) B 물류 솔루션 디자인 팀장
前) C 동남아 법인장
시대가 변하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예전엔 골칫거리였던 문제가 쉽게 풀리기도 하죠. ‘산업구조 해부’는 실무를 뛰는 엄선된 전문가들이 직접 쓴 현장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기업 문제를 손쉽게 고치는 전문가들의 인사이트를 둘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