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국산화 사업2
대한민국 해군 출신으로 제가 가장 뿌듯하게 생각하는 함정이 있습니다. 바로 전설적인 **함입니다. 연안 방어에 머물렀던 대한민국 해군 작전영역을 대양으로 범위를 확대한 전투함입니다. 이 전투함에 승선한 함장과 승무원의 자부심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해군의 전설인 함정에 문제가 하나 발생합니다. 전투함에 탑재된 무기체계 중 하나인 **mm포 전자기판 하나가 고장이 났습니다. 전투함에는 다양한 무기체계가 존재하며, 그 다양한 무기체계 중에 어느 하나도 작동하지 않는다면 전투함 기능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무기체계는 해외에서 도입된 장비로, 회로기판 역시 해외에서 생산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제조사와 연락이 닿아 회로기판 공급을 요청했지만, 생산을 중단했다는 답이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전설이어도 기능이 멈춰 정해진 작전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조금 과장해서 물에 뜨는 기능만 남아있는 셈이죠.
현대 무기체계는 과거와 달리 모든 기능이 전자화, 자동화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몇 년 전 뉴스에서 이스라엘의 대공포가 불꽃을 뿜어내며, 자국을 적의 미사일로부터 방어하는 장면을 봤습니다. 그 무기체계 또한 전자화, 자동화 체계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작은 기기 하나라도 고장 나면, 전체 기능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특히 해군 함정의 무기체계는 대개 함정 외부에 위치해서 바닷물 등의 염분으로 인해 회로기판 고장이 잦습니다.
이 상황을 지켜볼 수 없었던 저는 국내에서 기기를 제조할 능력이 있는 업체들을 수소문했습니다. 대한민국 기술로도 충분히 반도체 회로기판을 설계, 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저의 믿음으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업체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업체 대표는 SK하이닉스에서 반도체 회로를 설계하다가 직접 벤처기업을 설립한 분이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함의 함장님과 해군에 연락하고 대표와 함께 방문했습니다.
회로기판 수리반장은 천군만마를 얻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 모습이 의아했지만, 실상을 듣고 보니 그만큼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한해 정비에 실패해 버려지는 회로기판이 약 300억 원 정도로, 해외에서 재구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해군 실정이 이러하다면, 최신식 무기체계를 운용하는 공군과 육군도 미루어 짐작할 만했습니다.
동행한 대표는 역시 이 방면 전문가였습니다. 회로기판을 수차례 테스트해보더니 어느 한 곳을 가리키며 제조사 LOCK이 걸렸다고 판정 내렸습니다.
문제는 수리 가능 여부였습니다. 업체 대표는 상당히 신중한 사람이었고, 조심스럽게 역설계로 회로기판을 제작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수리반장은 업체 대표 조언에 따라 회로기판을 테스트할 장비 구매를 결정했습니다. 업체 대표에게는 장비 판매까지 요청했습니다.
저는 항상 신뢰 관계를 강조합니다. 수리반장과 업체 대표는 상호 기술 신뢰를 담보하는 대화에서 신뢰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제작요청에 이어, 장비 판매까지 요청하는 선순환이 이뤄졌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저는 해군이 한해 수리해야 할 전자부품이 매년 3백억 원에 달한다는 사실과 비단 해군만이 아닌 육군과 공군도 국산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번에는 공군에서 겪었던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차세대 전투기’ 구매사업이 한창이던 2012년에 공군 **전투비행단을 방문했습니다. 해당 부대는 공군의 최신예 전투기가 주둔한 부대였고, 방문의 주목적은 실제 전투기 조종사가 배정된 ‘차세대 전투기’ 의견 청취였습니다. 공군은 저에게 부대 이곳저곳을 소개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곳은 전투기 정비창입니다. 부대 정비 담당자가 3D 프린터를 보여주면서, 미국에서 부품을 제 때 수급할 수 없다면, 부대 내 3D 프린터로 직접 부품을 제조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의 창의성에 경의를 표하게 되더군요.
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속절없이 미국만 바라볼 게 아니라, 충분히 국산 제작을 현실화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부품을 한데 모아 국내 기업에 턴키 방식((turnkey, 일괄생산))으로 공개해 국산화를 유도하는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원활한 부품 수급으로 전투기 작전성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많은 여운이 남았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이런 국산화를 유도하는 국방부 산하 기관이 많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저는 비록 첫 프로젝트가 소액이라도, 군과 비즈니스 인연을 맺어 사업화하고픈 기업이라면 국산화 프로젝트에 기꺼이 참가해보시라고 권해 드립니다.
군과의 인연은 진입장벽이 높은 편인 만큼, 수리 의뢰에서 시작한 사업이 장비 판매 요청까지 이어지는 게 국방 비즈니스입니다. 국산화 유도 기관에서 다양한 국산화 사업 정보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제품 생산에 자신감이 생긴다면, 국내 방산 대기업 협력업체와 해외 방산 업체의 협력업체가 될 사업 확장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종호
국방분야 사업진출 및 해외 수출 전문가
現) 탤런트뱅크 전문가
現) Avix Global 한국지사장
前) 방위사업청 연구원/파트장
시대가 변하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예전엔 골칫거리였던 문제가 쉽게 풀리기도 하죠. ‘뉴 트렌드’는 실무를 뛰는 엄선된 전문가들이 직접 쓴 현장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기업 문제를 손쉽게 고치는 전문가들의 인사이트를 둘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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